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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방어진..동동그루므..트로트역사.......43 듣기/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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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이 필때 2021. 5. 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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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동’ 북소리에 불현듯 떠오른 어머니 얼굴

 

 

노래 ‘동동구루무’에서 ‘동동’은 북소리고 ‘구루무’는 화장품 ‘크림’의 일본식 발음이다.

 

1920년대 전후로 개발된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화장품인 박가분이 1930년대에 생산을 중단하는데, 당시 그나마 있는 집 여성들과 화류계에서 선별적으로 사용하던 화장품이 사라지게 됐다.

 

 

 

이런 틈새시장에서 풍악을 울리고 동동거리며 판매하는 보부상, 화장품 행상이 동네 골목마다 생겨났다.

 

처음에는 소련(현 러시아) 행상들이 서툰 한국말로 너스레를 떨며 크림을 팔았다. 그러고 나서 우리나라 사람이 아류로 그 뒤를 이었다.

 


동동구루무 한통만 사면 온 동네가 곱던 어머니

지금은 잊혀진 추억의 이름 어머님의 동동구루무

바람이 문풍지에 울고 가는 밤이면 내 언 손을 호호 불면서

눈시울 적시며 서러웠던 어머니 아 동동구루무

동동구루무 아끼시다가 다 못쓰고 가신 어머니

가난한 세월이 너무 서럽던 추억의 동동구루무

(방어진 ‘동동구루무’ 가사)




 

북을 두번 탕탕 친 후 구루무를 외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동동구루무다. 이런 시대적 상황이 노래 ‘동동구루무’의 배경이다.

동동구루무 장수는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등에 큰북을 짊어졌다. 북채를 발목에 묶고 발길질을 하면 북이 울린다. 입에는 하모니카를 물었다. 화장품은 가방 속에 들었다.

 

 

‘동동구루무’를 작사·작곡한 김병걸이 본인 나이 10세 전후에 보았을 풍경인데, 곡조에 섬세한 기억의 되새김이 묻어난다.

 

 

 


그렇다면 ‘동동구루무’는 누가 부른 노래일까. 노래는 떴는데 가수는 사라졌다. 처음에는 2006년 방어진이라는 가수의 목청으로 세상에 울려 퍼졌다.

 

그런데 방어진은 노래 홍보를 접었다. 하지만 이 노래는 노래방에서 사람들에게 자주 불렸고 노래교실 강사들도 많이 가져다 썼다.

 

 

 

 

2008년 탤런트 출신 가수 김성환이 ‘동동구루무’를 본인 앨범에 다시 실어 인기를 얻었다. 덕분에 이 노래를 그의 노래로 아는 대중이 많다.

 

 

 

 

 

 

'동동구루무'에 가득한 어머니의 손길이 그립다

 

 

김용임이라는 가수가 부르는 '추억의 동동구루무'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예전에는 이 동동구루무가 여성들에게는 꽤나 호사스런 품목이었던 것만 같다.

 

가끔은 퇴색한 영화 속에서 장에 나갔던 돌쇠녀석이, 세경을 받은 돈으로 동동구루무 한 통을 사오는 모습이 그려진다. 물론 그 동동구루무는 돌쇠가 연모하던 마을 양반집의 여종인 옥분이에게 건너갔을 테고.

 

 

동동구루무 한 통을 받은 옥분이는 그동안 벌처럼 돌쇠만 보면 쏘아대던 말투가, 얼굴에는 가득 미소를 띠면서 고분고분해졌을 것이다. 이런 추억을 가진 동동구루무는 꽤 오랜 시간동안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동동구무루란 명칭도 아마 화장품을 팔고 다니던 장사꾼의 모습 때문에 나온 이름인 듯하다.

 

 

 

 

 

 등뒤에 짊어진 북소리 '둥둥'

 

어릴 적에 마을로 돌아다니면서 동동구루무를 파는 장사를 본 적이 있다. 1950년대야 지금처럼 대형 슈퍼마켓 등 종합적인 물건을 파는 곳이 없었다. 그저 마을마다 몇 개씩 있는 '○○상회' 혹은 '○○상점'이라는 간판을 단 구멍가게들이 다였으니까 말이다. 이때는 간장과 같은 찬거리며, 이것저것을 팔러 다니는 장사들이 연신 마을을 돌아칠 때다.

 

 

 

아마 당시에는 이 동동구루무만큼 인기가 있었던 상품도 그리 흔하지가 않았다. 등 뒤에는 대북을 메고, 손에는 작은 북이나 하모니카 등을 들고 다닌다. 북소리가 나면 여기저기 흩어져 놀고 있던 아이들이 쫒아와,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도 했다. 마을의 아낙네들이 몰려나오면, 용기에다가 듬뿍 큰 통에 든 구루무를 퍼 담아 주기도 했다.

 

 

동동구루무 장사가 걸어가면, 등 뒤에 맨 북의 채와 발목에 연결한 끈이 북을 친다. 그 북을 치는 소리가 걸어갈 때마다 '둥둥'하고 울렸다. 그런 모습이 재미있어 아이들은 그 뒤를 따라다니면서, 걸음을 흉내내기도 했다. 벌써 그런 모습을 본 것이 50여년이 훌쩍 지나버렸으니, 이도 당시의 신풍속도였다는 생각이다.

 

 

 

 

 

어머니의 정이 그리운 동동구루무

 

한 겨울에 찬바람이라도 나가서 쏘이고 들어오면, 어머니는 당신이 아끼시던 동동구루무를 듬뿍 손에 발라 비벼주시고는 했다. 그 냄새가 그때는 왜 그리도 좋았는지 모른다. 아마 그 냄새는 당시 일을 하느라 땀에 절어버린 어머니의 냄새와 함께, 지금도 기억을 할 만한 나름의 포근한 어머니의 냄새를 만들어 냈던 것 같다.   

 

요즈음 여인들은 동동구루무라고 하면 싸구려 화장품으로 생각을 하겠지만, 당시의 동동구루무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그 구루무 한 통에 수많은 사연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구루무 한 통으로 사랑을 얻기도 하고, 많은 눈물도 흘렸기 때문이다. 연일 영하로 떨어져 올라갈 줄 모르는 날이 계속돼서인가? 어머니의 동동구루무가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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