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대학가요제에서 ‘그때 그 사람’으로 데뷔해 ‘사랑밖엔 난 몰라’ ‘비나리’ 등 숱한 히트곡을 내며 40여 년간 사랑받아온 가수 심수봉 씨. 가요 음반 '붉은 장미화'가 발굴되면서 다시 주목받는 1920년대 명창 심매향의 오빠인 심재덕의 딸이다. 주요 포털에 1955년생이라 돼 있지만 “실제로는 1951년생”이라고 본지에 직접 밝혔다.
지난 1979년 1집 ‘그 때 그 사람’으로 데뷔한 심수봉은 이후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랑밖에 난 몰라’, ‘미워요’ 등의 주옥같은 히트곡을 남기며 30여 년 동안 국민가수로서의 사랑을 받았다.
심수봉은 직접 작사, 작곡을 하는 싱어송라이터로도 유명하였다
그중 데뷔곡 '그때 그 사람'은 직접 작사해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그는 4대에 거친 명문 국악 집안에서 태어나 4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기에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그때그사람은 데뷔곡이기도 하지만 "78년도 2회 mbc 대학가요제에 냈던 노래다. 사연이 있었다.
"1978년 자작곡 '그때 그 사람'으로 MBC 대학가요제에 나갔다가 본선에서 떨어졌을 때 크게 낙담했지만 다음날 레코드사에서 연락이 와 바로 음반 계약을 했었다
가사 그대로 누군가를 짝사랑했었다"며 작사의 계기를 밝히기도 했다.
또한 심수봉은 "영감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얘기를 하다가 잠깐 차마 시다가 만나도 영감이 떠오르면 4 소절이나 8 소절이 잡히면 얼른 적어서 완성한다"라고 밝혀 놀라움을 안겼다. 한대 그 첫사랑이 나훈아이냐며 소문도 돌기도 했지만 본인은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가수 심수봉(沈守峰, 본명: 심민경)은 1950년 충청남도 서산 출생으로 본관은 청송이며, 인화여자고등학교와 명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심수봉의 집안은 유명한 음악인의 가정으로 그녀의 할아버지는 판소리와 가야금 명인이었고, 아버지 심재덕은 민요 수집가였다. 이런 집안의 환경 속에서 자라다 보니 그녀도 자연스럽게 음악인의 삶을 걷게 된다.
심수봉은 피아노를 비롯 악기를 잘 다루었으며, 보컬 그룹 <논스톱>의 드럼 주자로 미 8군 부대 전용 클럽 무대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다. 이때 같은 그룹은 아니었지만 같은 부대에서 함께 활동하던 가수 김수희와 친분을 쌓게 되었다.
이때 그녀는 예명을 지었는데, 어릴 때 ‘가수로 성공하려면 이름을 바꿔야 한다’며 스님이 지어준 법명인 ‘심수봉’으로 예명을 정했다.
심수봉은 1975년에 처음으로 청와대 연회에 초청받아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후 그녀는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8년, 대학생의 자격으로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해 자신이 직접 작곡과 작사를 한 《그때 그 사람》을 불러 관심을 끌었다.
대학가요제에 최초로 트로트 장르로 출전한 이색적인 경력으로 대중들에게 주목은 받았지만 대회에서 상을 받지는 못했다. 당시 대학생들의 음악적 성향이 포크 아니면 그룹사운드이던 시절이라 트로트라는 장르가 맞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심수봉은 이 노래가 히트를 치면서 1979년 6월부터 정식으로 가수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때 그 사람》을 불러 데뷔와 동시에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 심수봉은 데뷔 전 청와대에 초청되었던 인연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연회 때마다 심수봉을 초청하여 한동안 그녀는 청와대 연회가 주 무대였다.
당시 심수봉은 인기를 누리며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1979년 10월 26일. 이 날 가수 심수봉에게는 또 다른 운명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수봉은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가에서 행해진 박정희 대통령의 대행사(대통령, 비서실장, 중정부장, 경호실장이 참여하는 연회)에 차출되어 현장에 있었던 것이다.
10월 26일. 그날 심수봉은 집에 있었다. 오후 16시 30분 경이되자 전에 만난 적이 있던 중앙정보부 박선호 의전과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와 17시 30분까지 내자호텔에서 좀 만나자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날 저녁 ‘쇼쇼쇼’ 프로 스케줄이 있어 곤란하다고 했는데, 그것은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해서 심수봉은 연예인들 공연이 있는 줄 알고 흑석동에서 기타를 사 가지고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내자호텔로 갔다.
호텔에 도착한 심수봉은 박선호 의전과장, 그리고 차량에 동승하고 있던 신재순과 함께 궁정동으로 가게 된 것이다.
궁정동에 도착한 심수봉과 신재순은 보안 각서를 쓰고 곧바로 연회 방으로 들어갔다. 이후 분위기가 무르익자 박정희 대통령은 노래나 한 곡씩 들어보자고 해 심수봉은 기타를 치며 ‘그때 그 사람’을 불렀다.
이어 박 대통령이 한 곡 더 불러 달라고 해 앙코르곡으로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불렀으며, 차 실장이 ‘도라지’와 ‘나그네 설움’이란 두 곡을 불렀다.
이때 차 실장의 노래가 끝난 후 이날 밤 처음으로 대행사 요원으로 차출된 ‘신재순‘이 '사랑해’를 부르려고 할 때 김재규 부장이 앉은 자세로 차 실장을 향하여 “이 건방진 놈” 하면서 총을 한 발 쏘았고 바로 일어나서 대통령 각하를 향하여 1발을 쏘았다.
심수봉과 신재순의 부축을 받은 박 대통령은 “나는, 괜찮아”라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이후 심수봉은 대통령 시해 현장에 있었던 이유로 합수부 조사를 받았으며, 1979년 11월 18일 육군본부 계엄 보통 군법회의 검찰부에서 진술도 했다.
이어 심수봉은 10.26 사건 관련 무혐의로 결론이 났으나, 방송 활동이 금지되고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하는 등 파란만장을 겪어야 했다.
삶을 살면서 많은 일들을 겪지만 심수봉은 하루아침에 그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말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운명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이후 심수봉은 몇 년 간 실의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한편 심수봉은 1979년 10.26이 일어나기 전 드라마《순자의 가을》주제곡을 직접 만들어 불렀는데, 《순자의 가을》이라는 곡은 처음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노래 제목에 영부인의 이름 '순자'가 나온다는 이유로 방송 금지 조치를 당했다.
이후 1983년 후배 가수 방미가 이 노래의 제목을〈올 가을엔 사랑할 거야〉로 변경하고 가사 일부를 수정해 인기를 모았다.
마침내 1984년. 심수봉의 방송 활동 금지가 풀렸다. 침체기에 빠졌던 상황에서 그녀는 다시 가요계에 복귀하여 직접 작곡/작사 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가 수록된 앨범이 외설 시비에도 불구하고 2만 여장이나 팔리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심수봉은 다시 가수로 우뚝 서게 된다.
또한 1987년에는 정통 트로트 《사랑밖엔 난 몰라》를 발표하여 사랑받고 싶은 여성의 마음을 담은 노래이기도 해서 여성들에게 널리 불리게 되었다.
심수봉은 박정희 대통령과의 묘한 인연이 있다. 일화 한 가지.
박정희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 일본 여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 《슬픈 술(가나시이 사케》를 불렀는데, 내가 일본 가수인 줄 알고 박 대통령의 표정이 안 좋았다.
하지만 내가 《눈물 젖은 두만강》과 《황성 옛터》를 부르니 그제야 박 전 대통령이 내가 한국 가수인 것을 알고 좋아했다.
심수봉은 자신이 경험했던 것들을 음악에 표현하여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슬프고 애절한 곡들을 많이 불렀다.
가수 심수봉은 서정적인 가사에 더해진 애절한 단조의 창법과 비음 섞인 떨림, 구슬픔이 담겨있는 애잔한 음색 그리고 한국적인 한이 깊이 담겨있는 목소리의 가수이다.
심수봉/그때 그 사람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사랑의 괴로움을 몰래 감추고 떠난 사람 못 잊어서 울던 그 사람 그 어느 날 차 안에서 내게 물었지 세상에서 제일 슬픈 게 뭐냐고 사랑보다 더 슬픈 건 정이라며 고개를 떨구던 그때 그 사람 외로운 병실에서 기타를 쳐주고 위로하며 다정했던 사랑한 사람 안녕이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지금은 어디에서 행복할까 어쩌다 한 번쯤은 생각해줄까 지금도 보고 싶은 그때 그 사람
외로운 내 가슴에 살며시 다가와서 언제라도 감싸주던 다정했던 사람 그러니까 미워하면 안 되겠지 다시는 생각해서도 안 되겠지 철없이 사랑인 줄 알았었네 이제는 잊어야 할 그때 그 사람 이제는 잊어야 할 그때 그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