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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최희준.. 진고개신사 ..트로트역사....... 3 듣기/가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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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이 필때 2021. 4. 2.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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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최희준 본명 : 최성준
    출생 : 1936년 5월 30일
    신체 : 키160cm
    직업 : 국내가수
    학력 : 서울대학교
    데뷔 : 1960년
    데뷔곡 '우리애인은 올드미스'
    경력 : 2004년 한국대중음악연구소 이사장 2001년 문예진흥원 상임감사
    수상 : 2007년 문화훈장 2007년 제14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대상

 

 

 

진고개는 지금의 충무로 일대로 충무로 2가,  전 중국대사관 뒤편에서 세종호텔 뒷길에 이르는 길로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남산으로 이어지는 낮은 구릉의 고개가 있었다.

 

이곳은 비가 오면 진흙밭으로 바뀌어 "진고개"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이곳을 지나 이르는 곳에 남산골(지금의 남산 한옥마을 인근)이 있어 가난한 선비들이 주로 살았는데,

과거 준비를 하거나 낙방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눌러 앉아 다음 과거를 준비하는 생원님(샌님)들이모여 살았다.

 

이들은 진고개를 지나기도 좋고 오래 신을 수 있어 주로 나막신을 신고 다녔기에 "딸깍발이"로불렸다. (이희승 수필 "딸깍발이" 참고)

 

 

진고개(한자명 泥峴 이현)는 광무 10년(1906년, 순종 즉위년)에 언덕을 깎아내고 한국 최초의 하수시설을 하여 우수와하수를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는 행정동이 바뀌며 본정 1 정목부터 5 정목까지 구성되며 본정통으로 불리었다.

일본이 이곳에 일본공사관을 세운 1885년 무렵부터 일본 인촌이 형성되었고 본정(本町, 혼마찌)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근처 예장동에는 일제 강점기 초기 총독부 관저와 일본군 헌병대 주둔지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에도 이곳은 진고개로 명맥을 이었으며 지금도 몇몇 음식점의 상호로 남아 있다.

 

해방 이후 일제의 기를 잠재우기 위해 이곳을 이순신 장군의 아호를 따서 "충무로"로 정했다가 지금은 도로명주소로 바뀌면서 명동길로 바뀌었다. 

 

진고개 -> 본정통(혼마찌) -> 충무로 -> 명동길

 

 

    진고개 신사/노래/박사[임창순]

원곡/최희준

미련 없이 내뿜는 담배 연기 속에
아련히 떠오르는 그 여인의 얼굴은
별마다 새겨보는 별마다 새겨보는
아~~ 진 고개 신사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올리며
언젠가 들려주던 그 여인의 노래를
소리 없이 불러보는 소리 없이 불러보는
아~~'진 고개 신사

 

진고개는 충무로에서 명동으로 드나드는 길이다.

지금의 세종호텔 뒷길 정도 되겠다. 이 길을 따라 어슬렁 걷다 보면 포토 스튜디오들이 즐비한 구역도 나오고 영락교회가 있고 명동성당이 있다.

 

말이 고개지 경사는 거의 없는 평평한 길이다.

 

포장되기 전엔 비만 오면 흙뻘이어서 진고개라 불렀다 한다.

 

남산골 선비들이 나막신을 신고 다녀서 ‘남산골 딸깍발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그러나 진고개는 어느 특정한 곳이라기보다는 그냥 명동거리와 그 일대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충무로의 영화인들이 무시로 명동의 술집이나 카페로 드나들며 폼을 잡았으며 명동을 근거지로 한 문학가들이 세상 온갖 고뇌를 다 짊어진 양 인상 쓰고 다니던 길이기도 했다.

 

50~60년대 한창 서구의 문물을 선망하던 세월인지라 세인들의 눈엔 그런 양복쟁이들이 고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 풍토와 서정들이 이런 류의 대중가요들을 생산해 낸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슈샨 보이, 세월이 가면, 황혼의 엘레지,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단벌신사, 키다리 미스터김, 비 내리는 명동거리 등이 그것이다.

 

양복을 빼 입고 건들거리며 한 때를 풍미하던 일명 명동백작으로 불리는 작가들의 아지트 중 하나가 <은성>이었다.

은성은 최불암의 모친인 이명숙 여사가 운영하던 술집이었다.

 

명동길 한 귀퉁이에 그것을 알려주는 조그만 팻말이 서 있다.

 

변영로, 박인환, 김수영, 이봉구, 오상순, 전혜린, 천상병 등이 그 면면들이다. 이곳에서 그 유명한 박인환의 시가 탄생하였다.

 

그들이 드나들던 고개가 진고개다.

 

도성의 가장 번화했던 저잣거리였던 명동은 그 역사와 전통만큼  수많은 애환과 이야깃거리를 간직하고 있다.

우리 대중가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이 명동이다.

 

오며 가며 자주 들를 일이 많을 것이고 또 그러고 싶은 곳이다.

멜로디도 부드럽고 매혹적이지만 가수 최희준 님의 목소리가 ~아이스크림보 다도 부드럽고 구수했어요.

그당시 느낌은  그냥  편한 동네아저씨가  불러주는듯한  목소리였었죠.

 

그리고  서울대  법대나온사람이 가수가되어서 우리가요가수들이  조금은 격상되는듯한 다들 다시한번  생각하게했던걸로  기억이 나요.

 

 

그시절은  딴따라라해서 그렇게  불리웠었거든요

 

듣고있노라면  스르르~마음의 응어리가 다 풀어지는 듯,

알지 못할 가슴에 맺힌 한이 다독여지는 듯한 노래...

 

검색해보니 60년대 '진고개 신사'라는 영화가 있었더군요.

영화를 본적도 스토리도 모르지만 아마 그 영화의 ost가 아니었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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