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곡으로 〈비처럼 음악처럼〉, 〈내 사랑 내 곁에〉, 〈추억 만들기〉, 〈사랑했어요〉 등이 있다.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대표적인 가수이다. 1990년 11월 1일 간경화로 인해 32세의 한창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츌생;1958년 1월 7일,
사망정보; 1990년 11월 1일,
키;180cm
배우자;김경자 (1982년–1990년)
김현식은 1980년대 한국 최고의 인기를 누린 레전드다. 1958년 서울시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났다. 그가 처음 기타를 접한 것은 보성중학교 재학 시절이었다. 사촌 형인 양국 정에게 기타를 배우면서 음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는 1973년 명지고등학교에 들어가지만 1학년을 마치기 전, 가족들 몰라 자퇴서를 냈다.
1975년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기타를 메고 공연장을 누볐다. DJ활동을 하던 전유성을 우연히 만나기도 했다. 당시 전유성은 김현식에게 “가수가 되면 전설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김현식은 순식간에 언더그라운드의 주목받는 신인으로 신촌블루스 등 그룹에서 보컬로 활동한다.
그는 대마초를 피우기 시작하면서 점점 피폐해져갔다. 친한 후배인 고 유재하가 1987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로 술에 매달리며 건강을 챙기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그는 간경변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병원에서도 항상 그의 손에는 기타가 들려있었다고 한다.
1990년 11월 1일 그는 병원에서 동아기획 김영 사장에게 “사장님 저 괜찮으니까, 오늘 퇴원해서 내일 녹음에 들어가야겠어요”라고 전화한다. 하지만 이 전화 이후 2시간 만에 김영 사장은 김현식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의 유작이 된 6집 ‘내사랑 내 곁에’는 100만 장이 넘게 팔리는 대박을 거둬들였다. 이후 1991년 가요톱텐 골든컵을 수상하기도 한다.
김현식/내사랑 내곁에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이 당신의 그 웃음 뒤에서 함께하는데 철이없는 욕심에 그 많은 미련에 당신이 있는 건 아닌지 아니겠지요 시간은 멀어 집으로 향해가는데 약속했던 그대만은 올 줄을 모르고 애써 웃음지으며 돌아오는 길은 왜 이리도 낯설고 멀기만 한지 저 여린 가지 사이로 혼자인 날 느낄때 이렇게 아픈 그대 기억이 날까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줘 이 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저 여린 가지 사이로 혼자인 날 느낄때 이렇게 아픈 그대 기억이 날까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줘 이 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안길 곳은 어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