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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용복..달맞이꽃..트로트 역사.......8 듣기/가사보기

TV.연예/트로트

by 목련이 필때 2021. 5. 26.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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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복 님을 아십니까?

이용복

출생 1952년, 대구

데뷔 1970년

앨범 '검은 안경'

수상 1973.

 

대한민국 최초로 맹인 가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는 아직 TV가 많지 않던 시절 라디오에서 명석한 두뇌와 해박한 지식과 말솜씨로 요즘의 예능프로와 유사한 당시의 인기 프로 가운데 하나였던 동아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유쾌한 응접실"에 출연해 유창한 재담으로 방청객에 웃음과 놀라움을 주었다.

 

 

선천성 소아 녹내장을 앓던 그는 8살 때 사고로 시력을 잃어 맹아 학교에 입학했다. 1970년 1월,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수로 데뷔했는데, 처음엔 장애인이라는 점 때문에 인기를 끌었지만, 1971년에 여러 신인 가수상을 받으면서 가수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기타리스트로서도 재능이 있어서 양희은의 데뷔 앨범 《아침 이슬》에서 12줄 기타를 맡기도 했다. 1972년과 1973년 연속으로 MBC 10대 가수상을 받았다.

 

 

 맹아초등학교 4학년 때 부친이 사다 준 기타를 들고 벤쳐스, 비틀스, 지미 헨드릭스, 크림 등 고수의 기타리스트가 되기 위해 음악을 연습했다.

어찌나 열심이었던지 손가락에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연습에 열중하는 것을 어머니가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맹아학교 중3 때 친구들과 캑터스라는 4인조 록그룹을 결성하여 기타와 보컬을 맡기도 했었다.

 

'미국 록음악 음악계의 3대 기타리스트'라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1970년대 한국 통기타 음악에서 3대 기타리스트'라는 말은 못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통기타 음악의 3대 기타리스트 하면 송창식, 김민기, 그리고 이용복을 꼽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TV에서 본 이용복의 모습은 '어린 시절', '쥴리아'그리고 달맞이꽃이었다.

 

그 시절  그 곡은  왜 그렇게  이용복이랑  잘 어울렸던지  나도 모르게 그냥 따라 불렀었던 것 같다  

 



이용복의 정신적 멘토는 시각장애인으로서 추앙받는 호세 펠리시아노, 레이 챨스와 같은 세계적인 음악인들이었다.

 

그가 솔 음악의 대부인' 레이 챨스"에게 점자로 편지를 써 보냈더니 "레이 챨스"는 진심으로 따뜻한 격려의 답장을 보내와 편지를 통해 우정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에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은 지금보다 훨씬 심했다. 특히 시각장애인은 택시조차 승차를 거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1970년 음반을 취입하고 데뷔했으나 역시 방송계에서 장애인을 터부시 하는 바람에 출연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1971년에 당시 산레모 가요제 대상곡이었던 '마음은 집시'와 자신의 자전적 생을 담은 '1943년 4월 3일생'이 히트하면서 이용복의 이름은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애절하지만 힘 있고 맑은 목소리에 장애인으로서의 그늘을 볼 수 없는 낙천적 태도는 이전에 보지 못하던 새로운 가수의 모습이었다. 

1971년 말에 TBC MBC에서 열린 연말 시상식에서 모두 신인상을 받으면서 이후 이용복은 가요계 정상의 위치로 올라서게 된다. 지금까지도  시각장애인 가수는 안 나타나고 있다.

 

 

이탈리아 가수 < Lucio Dalla 루초 달라 >가 1971년 발표한 < 4 Marzo 1943 >를 한글 가사로 번안하여 < 1943년 3월 4일생 >으로 < 이용복 >이 내놓자 지금까지 짓눌려왔던 장애인이라는 편견을 벗어던지고 정상의 인기 가수 자리로 올라서게 됩니다.

 

1972년에는 < 남진과 윤정희 >가 주연한 영화 < 어머니 왜 나를 나셨나요 >도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중에 달맞이꽃이  제일  제 추억에  남 은곡이랍니다

 

가요무대에서  부르신 곡 들어보겠습니다..

 

 

한 방송에서 이용복 님은 아들과 다정하게 데이트를 하는 모습이 공개되었는대요

 

 

이용복 님과 아들이 운영하는 카페는 충남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 2길(모항리)에 위치한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이다.

 

그리고 이용복이 운영하는 펜션은 카페와 같은 건물에 있는 '만리 포니아'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평생을  장애로 살아가는 이용복 님이지만  늘  밝고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공개되어  팬으로서도 마음이 뿌듯하답니다  아드님과 같이  행복한 시간 보내시는 모습 너무 보기 좋네요  만리포 쪽으로  갈기회가 있으면  들러바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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