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돌담길’, ‘바보처럼 울었다’, ‘오 님아’, ‘시오리 솔밭 길’ 등 많은 히트곡과 더불어 시대를 함께 노래한 미남, 미성의 스타 진송남.
1962년 부산 MBC 전속가수로 데뷔한 진송남은 1960년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덕수궁 돌담길’을 배경으로 한 동명의 노래를 불러 주목받았다.
‘덕수궁 돌담길’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바보처럼 울었다’ ‘고향 처녀’ 등의 히트곡을 냈다.
진송남(陳松男)은 1943년, 부친 진성용(陳性用)과 모친 손쇠(孫釗) 사이에서 2남 5녀 중 장남으로 일본 구마모토에서 태어났다.
일본에서 불리던 이름은 마쓰오(まつお, 松男). 3살 때 광복을 맞으면서 부산으로 건너와 유년시절을 보냈다.
유독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해 ‘신동’이라 불렸던 그가 본격적으로 가수의 꿈을 꾼 것도 이때부터다.
부인과 함께 부부 앨범 ‘나란히 걸읍시다’를 내고 활동했다.
1962년, 부산 MBC 전속가수로 활동을 시작해 전성기 시절, 청춘스타였던 그가 남진, 태원 등과 함께 베트남전에 파병돼서 손에는 마이크 대신 M16 총이,
어깨엔 4개의 수류탄, 허리엔 탄띠를 두르고 방탄조끼에 철모를 쓴 늠름한 모습에 파월장병들의 사기는 물론 고국에 있는 장병 가족들까지 안심시키기에 충분했다.
지난 55년 간 노래가 삶의 전부였던 가수 진송남의 노래 인생,
“중2 때 혼자서 부산의 한 극장에 쇼를 보려 갔었어요. 현인씨가 사회를 보고 송민도, 도미, 최갑석, 안다성 씨 등이 출연해 단체로 무대 인사하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가수들이 한 명, 한 명 소개될 때마다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지요.
괜히 마구 설레고 흥분되기도 하고... 특히 최갑석 씨가 부르는 ‘마도로스 순정’에 소름 끼칠 정도로 감동을 받았어요.
그래서 그날 집에 오자마자 팔뚝에 ‘가수’라는 글자를 볼펜으로 꾹꾹 눌러 새기기도 했었죠.”
해서 동아중학교 재학 시절, 동창 친구 남정일과 함께 ‘울고 싶은 마음’의 작곡가, 강남주 씨가 운영하던 ‘강남주 노래교실’에 등록, 매일 이곳을 드나들며 가수로의 꿈을 다졌다.
“그때 배운 노래들이 ‘방앗간 집 처녀(남백송 노래)’ 같은, 당시 인기 있던 유행가들이었어요. 학교 수업시간에 배우던 노래와는 확연히 달랐지요.
선생님께서 콩쿠르 무대에 나가보라며 독려도 많이 해주시고...
그러나 그땐 너나없이 가난하던 시절이라 수강료를 더 이상 부모님께 받아낼 수가 없어 몇 달 후 접어야 했어요.
그때 얼마나 아쉬웠던지 거의 매일 노래교실 근처 자성대에 올라 마냥 서성대곤 했었죠.”
그가 말하는 남정일이라는 친구가 바로 ‘님과 함께(남진)’, ‘비 내리는 영동교(주현미)’의 작곡가 남국인 씨다.
그 역시 작곡가로 활동하기 전 남정일이라는 본명으로 음반을 취입, 가수로 활동했다.
부산 성남초-동아중을 거쳐 수산고에 진학한 그는 가수 현철 씨와 같은 반이었다.
“1학년 때 소풍을 갔는데 강상수(현철의 본명)가 ‘방앗간 처녀(남백송)’를 불렀어요.
그때도 노래를 참 잘했는데 특히 당시 창법이 지금의 창법과 똑같았던 게 유독 기억에 남아있어요”라며 허허, 웃는다.
진송남/덕수궁 돌담길
비나리는 덕수궁 돌담장길을
우산 없이 혼자서 거니는 사람
무슨 사연 있길래 혼자 거닐까
저 토록 비를 맞고 혼자 거닐까
밤비가 소리 없이 내리는 밤에
밤도 깊은 덕수궁 돌담장길을
비를 맞고 말없이 거니는 사람
옛날에는 두 사람 거닐던 길을
지금은 어이해서 혼자 거닐까
밤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