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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안다성..사랑이 메아리칠때..트로트역사.......52 듣기/가사보기

TV.연예/트로트

by 목련이 필때 2021. 5. 20.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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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성의 나이는 1930년생이다. 그는 1927년생인  송해보다 3살 나이 차이로 어리다. 

국내 학사가수 1호로서 경희대 영문과 재학 중이던 1955년 서울 중앙방송국 (KBS전신)의 전속가수 공모를 통해 가요계에 데뷔했다. 영문학도였던 안다성이 가수 시험을 보게 된 것은 당시 서울 중앙방송국 전속 악단장이었던 손석우 씨의 권유 때문이었다. 

 

 

 

손씨는 종로의 한 카바레에서 흥에 겨워 무대에 올라 가수 현인의 히트곡인 '서울야곡'을 부르는 안씨를 우연히 목격했고 적극적으로 가수 데뷔를 권하기 시작했다. 안다성은 가요계에 발을 내디딘 이듬해 오아시스레코드를 통해 발표한 라디오드라마 '청실홍실'의 주제가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갸 부르는 바닷가에서라는곡은 너무나 경쾌하고 시원한 파도소리가  들리는 쓸쓸한  바닷가에서 미성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우리의 서정을 참 아름답고 행복감에 넘치게 하였고 바닷가의 사랑의 추억을  서정적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준 원로 가수이다. 

 

 

 



'바닷가에서' '사랑이 메아리칠 때'가 그렇듯 부드러운 저음, 고즈넉한 시를 읊조리는 듯한 분위기의 노래로 먼저 떠올려지는 가수 안다성 씨. '안다성'은 본인 스스로 지은 예명이다. 세계적인 성악가 마리안 앤더슨의 이름에서 착안한 것으로 대중들로부터 부드럽게 불리어지고 싶어 '앤더슨'과 비슷한 발음, '안다성'이라 이름 지었다.

 

 

본명은  안영길(安泳吉). 

1931년 5월 25일  본명  안영길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청주로 이사해 유년시절을 보냈다. 1951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육군 정훈국 군예대에 입대, '1102 야전공병단' 소속으로 동부전선의 강릉 부근에 배치, 이 전장에서 2년 9개월 동안 무려 1백여 차례의 공연을 치렀다. 1955년 KBS 전속가수로 발탁되어 활동하던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드라마 주제가 제1호인 ‘청싱홍실’을 비롯해 ‘꿈은 사라지고’, 그리고 ‘바닷가에서’, 사랑이 메아리칠 때’를 비롯해 ‘에레나가 된 순희‘ 등을 무대에서 불러 히트시켰다. 

 



그가 본격적인 가수의 길로 접어들게 된 때는 9.28 수복 이후 서울로 복귀한 대학 3학년 때인 55년. 친구 생일자리에 초대받아 간 곳이 당시 종로의 '여정 카바레'. 사교춤이 한창 유행하던 무렵 이 곳은 풀 멤버 밴드가 있던 일류 카바레로 명성만큼이나 무대 또한 근사했다. 물론 그가 이전에 섰던 야전 무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이때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친구들이 그를 무대로 끌고 올라간 것이다.

 

 


이 돌발 사태를 제지하던 웨이터와 친구들 간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이윽고 몸싸움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도 무대에 오르자 그는 버릇처럼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노래를 시작했다. '서울야곡'. 야전무대에서 즐겨 부르던 가수 현인의 노래.

노래가 시작되자 아수라장이던 장내가 일순간 잠잠해졌다. 순간 그는 더욱 긴장했다. 그러나 이내 악기들이 하나 둘씩 자신의 노래를 따라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삼절까지 노래를 마쳤다.

 

 


무대에서 내려오자 의외로 악단장이 다가와 명함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방송국 전속가수 시험에 응시할 것을 제의해왔다. 명함에는 '중앙방송국 경음악단장 손석우'라고 적혀 있었다. 결국 그는 이듬해, 노래와 악보 테스트를 거쳐 권혜경 등과 함께 전속가수로 발탁된다.

 

그리고 몇 달 뒤 비로소 첫 취입할 노래의 악보를 건네받는다. 이 노래가 바로 우리나라 연속방송극 주제가 제1호인 '청실홍실'이다.

 

 



우리나라 드라마 주제가 제1호인 '청실홍실'은 당시 중앙방송국(현 KBS) 전속가수 안다성씨와 송민도 씨가 듀엣으로, 그리고 40인조 시온성 합창단(단장 이동일)에 의해 취입되었다. 취입 과정에서 불려지는 노래는 스스로도 근사했으며 반응 또한 예상 밖이었다. 그러나 정작 음반은 현인과 권혜경의 목소리로 출반 되었다.

이 노래로 실력을 인정받게 된 안다성 씨는 곧바로 오아시스 레코드사에 전속된다. 당시 오아시스는 일류 작곡가들이 활동하던 메이저 음반사로 그는 전속되자마자 박춘석 작곡의 '아주까리 주막집'을 비롯해 이재호, 손석우, 김호길 씨의 곡을 고루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한다.

 

 

모나리자, 비극은 없다, 흐르지 않는 강, 보헤미안 탱고, 굿바이 탱고, 바닷가에서, 사랑이 메아리칠 때 등. 이미 가요 명곡으로 자리매김한 그의 초창기 노래들은 발표 당시만 해도 이전 가요들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안다성 씨는 이 노래들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창법을 유감없이 표출해 보였다. 그는 '당시 내 월급이 아마도 대통령 월급의 다섯 배는 되었을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의 노래를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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